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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모나이트

   개요   :  드라마, 멜로/로맨스

   개봉일   :  2021-03-11

   감독   :  프란시스 리

   출연   :  시얼샤 로넌, 케이트 윈슬렛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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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리의 [암모나이트]는 메리 애닝이 주인공인 아주 이상한 영화입니다. 보통 메리 애닝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영리하고 씩씩한 여자아이가 역시 영리하고 씩씩한 강아지와 함께 고대 바다 괴물의 화석을 발견하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그런데 [암모나이트]는 엉뚱하게도 애닝의 중년 시절의 로맨스를 소재로 삼습니다. 그것도 동성애요. 이 영화에 따르면 메리 애닝은 동료 고생물학자인 엘리자베스 필폿과 한 때 연인 사이였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지리학자 로더릭 머치슨의 아내이고 역시 지리학자였던 샬롯 머치슨과 사랑에 빠집니다.


어디까지가 진짜냐고요? 애닝은 정말 영화가 그린 시기에 샬롯 머치슨과 만난 적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메리 애닝, 샬롯 머치슨, 엘리자베스 필포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였다는 증거 같은 건 없어요. 이 모든 것은 프랜시스 리의 선동과 날조입니다. 다시 말해 [암모나이트]는 19세기 고생물학자와 지리학자들이 나오는 Real person slash, 즉 알페스입니다.


이래도 되나? 글쎄요. 이미 수많은 퀴어 실존인물들이 후대 사람들에 의해 억지로 이성애자가 된 역사가 있습니다. 할리우드에만 해도 그런 전기 영화들이 부글거리죠. 프랜시스 리는 정치적이 되어 한 번 반대로 해보자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리가 그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법도 없긴 합니다. 우린 애닝의 성적 지향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까요. 그냥 그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이지요. 우리가 관심이 있는 건 애닝의 화석이지 성생활이 아니니까요.


하여간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성인 메리 애닝은 과묵하고 무뚝뚝한 사람입니다. 남자 전문가들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졌고 세상에 대한 별다른 기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어머니와 함께 화석 가게를 운명하면서 새로운 화석을 찾는 게 유일한 인생의 목표이고 즐거움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더릭 머치슨이 화석 발굴 기술을 전수받겠다며 애닝을 찾아오더니, 뻔뻔스럽게 병약한 아내 샬롯을 맡겨 놓고 혼자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버립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듯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달짝지근함과는 담을 쌓은 영화입니다. 프랜시스 리가 그리는 19세기의 영국은 더럽고 불편한 곳입니다. 메리 애닝과 샬롯 머치슨 사이엔 정말로 대화가 없습니다. 최근에 호평을 얻은 여성 중심 동성애 로맨스 영화들을 보세요. 이 영화의 두 사람처럼 말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심지어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두 주인공이 만나는 [윤희에게]도 이렇게 과묵하지는 않아요. 이들의 대화 부재는 후반의 갈등에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건 조금 더 깊이 이야기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없는 척하며 꾸준히 이들 사이를 가로막는 계급의 벽에 대해서는요.


배우 의존도가 큰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찾는 관객들 상당수는 메리 애닝보다 케이트 윈슬렛과 시어샤 로넌의 로맨스 연기가 궁금해서 왔겠지요.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그림과 감정을 보여주지만 두 사람의 연기합은 좋습니다. 그리고 케이트 윈슬렛이 그린, 매일 계속 되는 육체노동으로 온몸이 피곤한 중년 메리 애닝은 쉽게 잊히기 힘든 사람이에요.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