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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개요   :  시대극

   개봉일   :  2015-09-16

   감독   :  이준익

   출연   :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전혜진, 김해숙, 박원상, 진지희, 박소담, 서예지

   등급   :  12세 이상



한글로 사도라고 쓰면 그 뜻은 使徒일 수도 있고 私道일 수도 있고 四道일 수도 있겠지만, 이준익의 신작 [사도]에서 사도는 생각할 사, 슬퍼할 도, 思悼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도세자 이야기죠. 영조가 뒤주 안에 가두어 죽인 정조 아빠. 수없이 극화된 사건이지만 우린 원래 같은 사건을 끊임없이 반복해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기억하죠.

영화는 굵직하고 빠르게 시작됩니다. 영화가 10분 정도 지났을까? 벌써 뒤주가 등장합니다. 사도세자가 뒤주 안에 들어가면서 첫 번째 회상이 시작되고 그 뒤로 영화는 사도세자의 시체가 뒤주 안에 들어가 있던 여드레 동안의 현재를 그리면서 그 안에 과거의 사건들을 끼워넣습니다. 이런 형식은 이야기에 추리물로서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압축률이 상당히 높아서 여러 모로 효과적입니다.

영화는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퓨전 사극'에서 벗어나 '정통사극'이 되려는 영화죠. 전 '정통사극'의 절대적 가치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정통 사극인 [리처드 2세]가 퓨전 사극인 [맥베스]보다 더 우월한 작품인가요? 하지만 영화가 이 정통성에 큰 의미를 두고 진지하게 추구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물론 아무리 정통사극이라고 해도 각자 자기만의 해석이 있기 마련입니다. 영화는 정치적인 해석을 될 수 있는 한 줄이고 가족 드라마에 집중합니다. 여기에 약간의 현대적 터치가 들어가기도 해요. 이 영화의 영조는 마치 자식에게 지나친 기대를 품고 있는 강남 학부모처럼 보입니다. 둘 사이엔 실제로 문화적 연결성이 있으니 이 해석은 무리한 게 아니죠. 하여간 이 정련된 세계에서 보여지는 부자간의 갈등은 현대 관객들이 공감할 구석이 충분합니다. 이 묘사에 동원되는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고.

단지 이 정통사극이 소재가 되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올바르게 다루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이건 이야기가 사실과 일치하느냐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시죠. 사도세자 이야기는 너무 자주 반복되었기 때문에 종종 우린 그 사건이 얼마나 잔인무도했는지 잊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상자 안에 가두어 말려죽였어요. 아들과 아버지를 죽이는 아버지와 아들은 흔해빠졌습니다. 절대권력을 쥔 사람들은 상상을 넘어선 일들을 하기 마련이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이 잔혹행위는 정도를 넘어서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대충 셋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아버지가 비정상적인 아들의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행위에 열받아 아들을 죽였다. 비정상적인 아버지가 정상적인 아들을 부당한 이유로 죽였다. 비정상적인 아버지가 그만큼이나 비정상적인 아들과 싸우다 죽였다. 다들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아버지가 정상적인 아들을 죽였다는 것이죠. 그것도 화가 나 칼로 찔러 죽인 것도 아니고 상자 속에 가두고 여드레 동안 아들이 죽어가는 걸 구경했습니다. 물론 한 나흘 정도 고생하다 죽었겠지만.

그런데 영화는 영조와 사도세자 모두를 정상화합니다. 다들 이해가 가는 사람들이에요. 아들에 지나치게 기대가 큰 아버지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아버지가 부담스러운 아들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만들어지죠.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뒤주까지는 안 갑니다. 그 사이에 뭔가가 빠진 거예요. 그 뭔가는 여러분의 역사 해석과 취향에 따라 뭐든지 될 수 있습니다. 당쟁이라거나, 정신병이라거나, 이 영화에 수상쩍을 정도로 조금 등장하는 시체들이라거나.

[사도]에서는 그 자리가 그냥 비어있습니다. 그냥 보편성에 호소하며 이해해달라고 하죠. 하지만 전 그게 안 됩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르려는 사람들을 정상성의 기준에 맞추어 이해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설명되지 않는 빈 공간에서 끝나고 말죠. 그들의 행동과 동기는 그 설명 밖에 있는 비정상의 영역에 있는 게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설명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거짓말을 하게 되지요. 이는 역사와 맞지 않는 거짓말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적 논리와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의미로서의 거짓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도]가 영화에 넣은 온갖 설명과 변명에도 불구하고 전 이 영화가 그냥 미완성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타등등
1. 이번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한국 후보로 내보냈다는데, 글쎄요. 우리나라 관객들은 이 영화의 스토리와 주제를 해석할 수 있는 코드북을 따로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 관객들은 사정이 다르지 않나요? 물론 이건 우리의 기계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이 참혹한 이야기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관심이 먼저 생겨야 하겠지만.

2. 박소담이 노숙원으로 나옵니다. 얼마 전에 방영한 사도세자 소재 단막극 [붉은 달]에선 화완옹주였죠.

3. [한중록]이 이 이야기를 다룬 가장 인기있는 소스인 건 이유가 있습니다. 적어도 혜경궁 홍씨는 영조나 사도세자와는 달리 완벽하게 이해가 가는 주인공이고 화자니까요.

4. 에필로그는 없는 게 나았습니다. 그리고 노역 분장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좋았을 거예요. 에필로그 파트에 나오는 환갑 분장한 문근영의 얼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더군요. 사실 임오화변 때 영조의 노역 분장도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쉬운 작업이 아니긴 하죠.

5. 여담인데 기자시사회 끝에 한 간담회에서 어떤 기자가 자긴 이 이야기를 어렸을 때 마가렛 드래블이 쓴 [붉은 왕세자비]를 통해 처음 접했다고 하더군요! 



콘텐츠 제공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