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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Pan)

   개요   :  어드벤처, 가족, 환타지

   개봉일   :  2015-10-08

   감독   :  조 라이트

   출연   :  휴 잭맨, 가렛 헤드룬드, 루니 마라, 리바이 밀러, 아만다 사이프

   등급   :  전체 관람가



대부분 프리퀄은 쓸데없습니다. 작가가 앞부분을 안 쓴 건 그냥 그 부분이 쓸모없기 때문이죠. 물론 이야기를 풀다보면 앞부분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오는 이야기가 좋은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앞뒤를 맞추다보면 이야기가 어색해지고 변명조가 되기 십상이죠. 속편은 논리적이지만 프리퀄은 아닙니다.

그래도 프리퀄에 대한 욕망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빈 부분이 있으면 채우고 싶기 마련이죠. 2차 창작의 경우엔 더욱 그렇고. 원작을 쓴 작가에 귀속되지 않은 적극적인 상상력의 소유자가 자신만의 주제로 작품을 쓴다면 의외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어요.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같은 작품들. 그래도 이런 성공작은 많지 않습니다.

조 라이트의 [팬]은 당연히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가 아닙니다. [제인 에어]의 버사는 척 봐도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해달라고 울부짖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피터 팬이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피터 팬의 과거를 알고 싶으세요? 피터 팬과 후크 선장이 어떻게 원수가 되었는지 진짜로 궁금한가요?

궁금하시다고요? 흠. 아마 그래서 이 영화가 나왔나 봅니다.

[팬]은 시작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시대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에요. 우리가 아는 피터 팬 이야기와는 시간대부터 안 맞습니다. 하여간 사악한 수녀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살고 있는 피터는 다른 고아들과 함께 검은 수염이라는 선장이 두목인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네버랜드로 끌려갑니다. 알고 봤더니 피터의 어머니는 네버랜드 출신. 피터는 검은 수염을 물리친다는 예언의 아이. 아, 그리고 피터는 검은 수염으로부터 탈출하다가 후크라는 청년과 원주민 공주 타이거 릴리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진부함'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다른 [피터 팬]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으니 잠시 신선하다는 착각에 빠지는 관객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세요. 이건 요새 공장생산되는 '삼부작 판타지 대작'의 클리셰가 총동원된 결과입니다. 피터 팬이 도대체 왜 예언에 의해 선택된 아이어야 하고 왜 절대악과 싸워야 하나요? 타이거 릴리가 구색맞추려고 넣은 '여전사'인 건 너무 뻔해보이지 않나요? 그리고 네버랜드에서 아이들을 노예로 부려먹으며 픽슘(요정 가루 원석!)를 모으는 검은 수염을 보고 있으면... 어, 이건 [아바타]잖아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하늘을 나는 해적선은 새롭지 않냐고요? 미안하지만 그건 [리턴 투 네버랜드]에서 오래 전에 써먹었습니다.

당연히 생기도 없고 개성도 없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왔는데, 그게 다 어디서 빌어온 구닥다리 기성품인 거죠. 이야기가 살아 움직일 에너지가 부족한 것입니다. 계산이 잘못되어 관객들의 기대도 만족시키지 못하죠. 예를 들어 이 영화는 삼부작 판타지의 1부처럼 보입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후크가 착한 편이고 손도 멀쩡하니 이들이 원수가 되는 2부가 나와야죠.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한가요? 피터 팬 영화는 시리즈로 나올 수 없습니다. 주인공 애가 자꾸 크니까요. 배우들도 할 일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캐릭터가 없으니까요. 그냥 어설프게 여전사, 영웅 롤플레잉을 할 수밖에 없어요. 남은 건 순전히 유원지용 쾌락뿐입니다. 4D에서 틀어놓고 보면 괜찮을 관객들도 있겠군요. 러닝타임이 111분이니 저 같은 사람은 멀미가 심각하겠지만.

조 라이트는 지금까지 제인 오스틴에서부터 레프 톨스토이에 이르는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지금까지의 경험이 그의 심미안과 별 상관이 없었다는 의미일까요? 이 각본이 먹힐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기타등등
루니 마라가 타이거 릴리를 연기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인종차별 논란이 있었습니다. 보니까 영화 속 원주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니라 다인종무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원주민'이 될 수 있죠? 



콘텐츠 제공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