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공포
개봉일 : 2025-01-15
감독 : 로버트 에거스
출연 : 릴리 로즈 뎁, 니콜라스 홀트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노스페라투]는 로버트 에거스의 신작이고,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사람의 첫 리메이크 영화입니다.
마지막은 아닐 거 같아요. [라비린스] 영화의 리메이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말이 돕니다.
원작은 1922년에 F.W. 무르나우가 만든 무성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979년에 베르너 헤르조크가 리메이크한 적 있고요.
그러니까 대충 반 세기마다 리메이크되는 셈입니다.
사실 2023년에 데이비드 리 피셔가 한 번 리메이크한 적 있기 때문에 에거스의 영화는 네 번째 [노스페라투]가 되긴 하는데,
그래도 이 간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죠.
여기서 '리메이크'는 좀 괴상한 설명이긴 합니다. 원작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자주 각색되는 소설 [드라큘라]의 무단각색물이에요.
스토커의 소설을 무성영화의 틀 안에서 독일 낭만주의 전통과 표현주의 어법을 섞어 각색한 작품이죠.
그러니까 그냥 [드라큘라] 영화인데, 헤르조크가 무르나우의 영화에 충실하게 리메이크를 만들면서 [드라큘라] 영화들 안에서 전통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에거스가 세 번째, 아니, 네 번째 영화를 만들면서 더 단단해졌고 은근슬쩍 캐넌이 되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830년대의 비스부르크라는 독일 도시입니다. 무르나우의 영화에서는 1838년의 비스보르크였지요.
헤르조크의 영화에서는 1850년대의 비스마르였습니다. 무르나우의 시공간은 그냥 '옛날옛적에'를 위해 막 던진 것이었지요.
단지 에거스는 언제나처럼 인류학적인 디테일을 더해 이곳을 아주 꼼꼼하게 구성합니다.
1830년대의 독일이 무대라면 그건 분명 의미가 있는 겁니다.
영화의 묘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19세기 초 독일 시민계급에 속한 여성들이 겪었던 삶의 조건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엘렌이 겪는 수난 대부분은 이 사람이 당시 여성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평범함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발생하고
영화는 그 교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남자들의 폭력을 그리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합니다.
영화는 세 편 중 가장 페미니스트 영화처럼 보이는데, 그건 그냥 이 시대를 정확하게 그리다보니 어쩔 수 없기 거기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에거스의 [노스페라투]는 여러 면에서 퀴어 영화처럼 보입니다.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엘렌의 이성애 욕망인데 말이죠.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 비슷한 계급의 이성애자 남자와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정상가족을 이루는 것에서 벗어난 모든 여자들의 욕망은 질병이고 고쳐져야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노스페라투]의 익숙한 서사 안에서 엘렌의 이 모든 욕망을 역겹고 위험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이걸 상징하는 것이 노스페라투, 그러니까 올록 백작입니다.
에거스는 이를 묘사하기 위해 원래의 올록 디자인을 버렸습니다.
원래 디자인도 충분히 불쾌하지만 그래도 호러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훌륭하고 인상적이며 무엇보다 고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좋은 면을 추구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영화의 올록은 영화 후반을 제외하면 늘 그림자 안에 있습니다.
개봉 전엔 보도자료에서는 사진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요.
에거스의 올록은 블라드 체페시의 초상화 모델을 물에 불려 썩힌 시체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정말로 시체입니다. 그리고 이 몸에 대한 욕망은 관객들을 질색하게 합니다.
올록이 뒤에 물러나 있기 때문에, 이 버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건 릴리-로즈 뎁이 연기하는 엘렌입니다.
무르나우의 원작은 엘렌을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낭만주의 소설의 여자주인공으로 만들었지만,
에거스의 엘렌인 그냥 이 영화의 알파이고 오메가입니다.
이 영화에서 엘렌은 올록 백작을 도시로 불러들인 원흉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빅토리아조의 이성적인 서구 남자가 동쪽에서 온 야만적인 존재를 격퇴한다는 스토커 소설의 설정을 대놓고 놀려대지요.
릴리-로즈 뎁은 여기서 정말 환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데, 심지어 이자벨 아자니보다 더 이자벨 아자니 같습니다.
그건 뎁의 연기가 헤르조크의 [노스페라투]에서 아자니가 보여준 연기보다 [포제션]의 아자니 연기에 더 가깝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에거스의 [노스페라투]는 자기 주장이 강한 리메이크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앞의 두 편과 전혀 다른 개성을 갖고 있죠. 그리고 그 모든 게 에거스스럽게 재미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이 만든 영화 중 가장 대중적으로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할 거예요.
단지 단순한 원작에 시대물의 디테일이 잔뜩 들어가다보니 조금 무겁고 설명적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토니 커쉬너의 각본을 쓴 스필버그의 시대물에서 종종 느껴지는 '좋은 데 좀 많다'라는 느낌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원작의 거의 동화적이기까지 한 단순한 결말로 가니까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