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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녀들

   개요   :  미스터리

   개봉일   :  2025-01-24

   감독   :  권혁재

   출연   :  송혜교, 전여빈, 이진욱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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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가 감독한 [검은 수녀들]은 2015년에 나온 장재현의 히트작인 [검은 사제들]의 속편 겸 스핀오프입니다. 

여기서 권혁재라는 이름은 장재현과는 달리 영화를 읽을 때 큰 도움이 안 됩니다. 

류승완의 조감독 출신으로 [해결사], [카운트] 같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전 [해결사]만 봤고 그 영화는 진짜로 별로였습니다. 

예고편만 본 [카운트]는 어떤 영화인지 잘 모르겠지만 [검은 수녀들]과는 전혀 연결지점이 없죠. 

꾸준히 자기 관심사를 자기가 쓴 각본을 통해 반영해온 장재현과는 달리 감독을 통해 무언가를 읽어낼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각본가 쪽을 봐야 하는데, 원안을 쓴 박수민, 임필성, 각본을 쓴 김우진, 각색가 오효진 중 한눈에 들어오는 이름은 임필성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걸 임필성의 필모 안에서 읽는 건 좀 이상한 일입니다.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여전히 장재현인데, 

이 영화에 이 사람이 얼마나 간섭했는지, 간섭을 하기는 했는지는 또 모르는 일이죠. 

그냥 영화는 이전 영화 속에서 비너스처럼 그냥 태어났고 각본가나 감독은 산파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속편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속편 겸 스핀오프라고 했는데, 그건 이 영화가 전편에서 이어지는 세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전편의 주인공들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영화 중간중간에 그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전편이 설정이 계속 이어지며 

전편을 본 관객들에겐 의미가 있는 배우들의 얼굴이 앞뒤에 하나씩 등장하는 정도입니다. 

전편을 안 본 관객들이라고 해도 큰 어려움 없이 볼 수 있습니다. 가끔 등장하는 낯선 이름이야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겨야죠. 

낯선 이름들이 등장하는 세계는 원래 당연한 것이니까요. 설정도 그렇게 복잡한 건 아니고.


수녀들 이야기입니다. 요새는 엑소시즘 영화에도 수녀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일단 [넌] 시리즈 같은 게 있습니다. 거기서는 악령도 수녀지만 맞서 싸우는 주인공도 수녀입니다. 

이렇게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키면 [엑소시스트]의 끊임없는 변주인 이 장르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바티칸의 여성혐오와 같은 것들 말이죠.


전편에서 가장 큰 차별점을 주는 것도 송혜교와 전여빈이 연기하는 두 여성 캐릭터들의 설정입니다. 

[검은 사제들]의 주인공들은 경험차이가 있을 뿐, 비교적 사회생활을 잘 하고 어느 정도 위치가 보장된 사람들입니다. 

신부이고 남자니까요. 

[검은 수녀들]과 비교하면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고민은 대부분 임무 자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검은 수녀들]은 이게 뒤집혀 있습니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악령보다 더 중요하지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유니아 수녀와 미카엘라 수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들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유니아 수녀는 지금까지 가톨릭 교회의 시스템 안에서 피튀기며 악령들과 싸워왔지만, 

교회의 남자들에게 이 사람은 그냥 '기도발이 꽤 잘 듣는 수녀'일 뿐이지요. 어떤 공식적인 지위나 인정도 없어요. 

미카엘라 수녀는 초자연현상을 부정하는 이성적인 의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자신의 능력을 억지로 묻어두고 

살아왔지요. 영화에서 악령을 퇴치하는 이야기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기 위한 도구적 의미가 더 큽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여러 모로 가톨릭 성인전스럽습니다. 

유니아 수녀는 생전에 주변 사람들을 계속 긁고 다니는 심술궂은 사람이었지만 어쨌건 성인이었던 이런 이야기 주인공들과 여러 

모로 닮았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당연히 악령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립니다. 

물론 여전히 아주 위험한 존재이긴 하지만 전편만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부마자 희준을 연기한 문우진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는 하는데, 전편의 박소담이 가졌던 연기 재료는 없습니다. 

아니, 있긴 있는데, 그렇게까지 배우를 배려하는 무언가는 아닙니다.


영화는 대놓고 악령을 하찮게 그립니다. 

유니아 수녀가 악령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도 "너는 흔해빠졌고 하찮다"지요. 

그리고 영화 내내 이 사람 정말로 그런 악령들의 진부함에 지친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 영화에서 공포는 전편처럼 눈앞의 악령 자체가 무섭다는 게 아닙니다. 

그 때문인지 종종 유니아 수녀의 의무감 속에는 데스 위시의 흔적이 보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이 악령은 노골적인 여혐종자이고 퍼붓는 언어 공격도 대부분 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욕설들은 대부분 유니아에게 먹히지 않는데, 보고 있으면 겨냥이 잘못된 공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각본가들이 어떻게 캐릭터를 짰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니아는 자신의 출산 가능성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은 분명 인식하고 있지만 여성성 자체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삶 자체가 힘든 사람에게 '너는 어떻게 죽는다' 운운의 공격도 의미가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속 유니아가 강력해 보이는 이유는 계속 악령이 계속 엉뚱한 데만 찌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령과 싸우는 액션에 중점을 둔 이야기라면 이건 약점이 되겠지만, 

악령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이야기에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이 사람의 드라마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유니아의 이런 성격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도 다시 보게 만듭니다. 

영화는 어떻게 보면 [엑소시스트]의 결말에 종교적 여성성을 추가한 것처럼 보입니다. 자궁의 의미가 아주 크죠. 

이건 도식적으로 보일 수가 있고, 정말 작가들이 그 도식성을 의미했을 수도 있는데, 

그와 상관 없이 이 캐릭터의 흐름 안에서는 그 도식성이 깨집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자궁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자궁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사람이 계속 자궁, 자궁, 자궁을 읊조리는 악령에게 자신의 자궁을 들이댄다? 그 행동은 아주 쉽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엿먹어라." 유니아 수녀는 이것보다 더 험악한 욕을 의미했을 수도 있습니다. 

척 봐도 영화는 이 사람이 비교적 예절바른 태도를 취할 때를 선별해 보여줍니다. 등급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악령의 공격은 미카엘라 수녀에겐 조금 더 잘 먹힙니다. 

이 사람은 정말 찌르면 찢어지고 벌어지는 상처가 있습니다. 

이건 정말 작가들이 의도적으로 넣은 일대일의 비유일 수도 있고, 그와 함께 정말 퀴어일 수도 있습니다. 

미카엘라는 무병이 치료된 척 하는 무당입니다. 

억지로 내세우는 과학적 논리를 무장하고 있지만 그게 정체성 혼란을 막지는 못하죠.


전편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다양한 종교의 스펙트럼이 뒤섞여 있는 동아시아 종교 문화를 보여줍니다. 

단지 속편에선 이게 조금 더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미카엘라 수녀처럼 수녀복을 입은 무당인 유니아 수녀는 악령을 퇴치할 때 현실적이 되어 

아주 자연스럽게 여러 종교적 패러다임을 오가고 여기에 대해 어떤 혼란도 느끼지 않습니다. 

미카엘라는 그렇지 않고 그 차이에서 이 영화의 드라마와 유머, 그리고 심술궂음 대부분이 나오죠. 

이 융통성은 경직된 종교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그건 종교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영화는 거기까지를 의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 융통성을 (조금 과시적으로)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1.66:1 화면비 영화입니다. 

무지 예술영화인 척 하는 비율이고, 얼마 전엔 [거미집]이 이 화면비를 썼죠. 

[거미집]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도 아카데미 비율을 쓰고 싶었지만 타협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이 비율은 특히 얼굴 클로즈업을 강조하는 데에 쓰입니다. 클로즈업이 정말 많은 영화예요. 

이건 전여빈처럼 표정을 감추지 않는 배우에게도 잘 먹히지만, 

송혜교처럼 영화 내내 무덤덤함을 뒤집어 쓰고 있는 배우에겐 더 잘 먹힙니다. 

관객들은 화면에 꽉 찬 그 배우의 얼굴을 보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미묘한 진동을 찾을 수 있지요. 

이 영화는 아이맥스로도 볼 수 있는데, 역시 그 값을 하는 스펙터클은 클로즈업에 있습니다. 


두 주연배우를 잘 쓴 영화입니다. 전여빈은 언제나처럼 좋은데, 송혜교 쪽이 할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이 사람은 40대에 들어오면서 점점 재미있는 어른 얼굴이 나오는 거 같습니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도, 장애와 중병에 시달리고 세상에 대한 환멸에 지쳐 있지만 

그래도 매번 세상을 구하려고 나가는 금욕적인 40대 여성이 가진 버석버석한 매력의 가능성을 몰랐을 리가 없겠지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