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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피

   개요   :  액션, 스릴러

   개봉일   :  2015-03-12

   감독   :  닐 블롬캠프

   출연   :  휴 잭맨, 샬토 코플리, 시고니 위버, 데브 파텔

   등급   :  15세 이상



닐 블롬캠프의 신작 [채피]는 로봇판 [피노키오] 또는 [올리버 트위스트]입니다. 2016년, 요하네스버그 경찰은 스카우트라는 인간형 로봇을 도입해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그런데 이 로봇을 설계한 로봇 개발자 디온은 단순히 경찰 로봇을 만드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을 개발해 결국 완성해내고 말아요. 회사에서는 반대하지만 그는 그 인공지능을 몰래 실험하기 위해 폐기된 로봇을 가져오는데 그만 중간에 강도단에게 납치되고 맙니다. 그들 밑에서 그는 새 인공지능을 로봇 몸에 이식하고, 그 로봇이 이 영화의 주인공 채피입니다.

예고편을 보면서 전 이 영화가 [자니 5 파괴작전]식의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기대의 하한선으로 놨던 거죠. 다행히도 이 영화는 로봇이 번개를 맞고 영혼을 가졌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스토리 전개를 보니 암담했습니다. 전 [자니 5 파괴작전]을 SF로서 높게 평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화엔 80년대식 순진한 재미가 있었고 주인공 로봇도 매력적이었지요. 하지만 [채피]에는 두 장점 모두 없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제점은 과학입니다. 한 마디로 생각을 하지 않는 거죠. 이런 종류의 인공지능이 만들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이고 어떻게 사고할 것인지에 대한 상상력이 턱없이 부족해요. 그냥 어린애 같을 거라는 짐작이 전부. 인간성, 자아, 생명 같은 개념에 대한 생각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디온은 채피가 단순한 로봇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게 해요. 채피는 버려진 차를 그리지만 그건 그냥 주어진 정보를 물감으로 프린트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각정보를 정확히 기억해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지적 존재에게 시각 예술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따라야겠지만 그런 건 안 하죠. 이런 식으로 생각없이 이야기를 진행시키다보니 결국 처음엔 아슬아슬하게 피했던 신비주의에 빠지고 말아요. 전 막판에 채피가 자기 정신을 옮기겠다고 인간이 쓰는 신경헬멧을 뒤집어 쓸 때부터는 그냥 포기하게 되더군요.

드라마 설정도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휴 잭맨이 연기하는 빈센트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건가요. 감독에 따르면 그가 만드는 거대한 이족로봇 무스는 '정부가 고가의 거대하고 비효율적인 기계를 만들어 국민에게 엄청난 세금을 내도록 하는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넣었다던데, 정작 회사 내에선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고객인 경찰도 무시하고 있으니 그냥 어이가 없습니다. 자기네들도 목숨이 날아질지 모르는 판인데 디온을 풀어주고 그에게 온갖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강도단의 태도도 이상하고요. 한마디로 동기가 쉽게 설명되지 않는 행동 투성이입니다. 이런 것들이 한 없이 나오니 집중이 쉽지 않아요.

가장 큰 문제점은 채피입니다. 전 비인간 지성에 쉽게 감정이입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채피의 경우는 그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일단 채피에겐 인공지능 특유의 개성이 없습니다. 그냥 로봇 몸을 뒤집어 쓴 짜증나는 애인데 심지어 목소리가 샬토 코플리인 거죠. 차라리 표정이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그러기도 쉽지 않고요.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몰입하기가 쉬운 것도 아닙니다.

[채피]가 이렇게 실망스러운 이유는, 최근 들어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와서 이와 비교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엑스 마키나]와 [빅 히어로] 같은 영화들요. 다들 불필요한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죠. 이들에 비하면 [채피]의 이야기는 그냥 게을러 보입니다. 여전히 액션과 로봇 디자인 같은 건 괜찮지만 좋은 로봇 이야기가 되려면 그 이상이 필요하지요.


콘텐츠 제공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