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SF
개봉일 : 2026-07-15
감독 : 나홍진
출연 : 활정민, 조인성, 정호연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나홍진의 [호프]를 두 번째로 보았습니다. 이 감독의 영화들은 대체로 좋게 본 편인데, 한 번 이상 본 영화는 이게 처음이죠.
아무래도 이전 영화들은 다시 보기엔 많이 꿀꿀하니까요. [호프]는 전작들과 비교하면 상쾌한 편입니다.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에 대한 감정이 관객들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죠.
1980년대 휴전선 근방의 호포항이란 곳이 배경인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거대한 인간형 괴물들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괴물들과 쫒고 쫒기는 액션 장면들 사이에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는 중간 휴식이 등장하고요.
마구 달리던 영화는 후반에 갑자기 자막을 얻게 된 외계인들의 대사로 다음 편을 예고하며 얼렁뚱땅 끝이 납니다.
나홍진 영화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여기서 완성도는 자기완결성을 말합니다.
이야기의 논리, 유니버스의 설정, 크리쳐나 기계 디자인이 칭찬 받을만큼 좋거나 그렇지는 못하죠.
칸에서 처음 공개되었을 때는 CG가 안 좋다는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외계 괴물이 나오기 전까지만 좋았다는 사람들도 있지요.
근데 이건 CG보다는 디자인 문제인 거 같습니다. 괴물이 휴머노이드 모양을 취하지 않을 때는 그게 그렇게까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거든요.
얄팍하고 유치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건 이 영화가 감추는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전작인 [곡성]은 완벽하게 설명될 수 없는 재료들을 갖고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어긋남과 빈틈은 그대로 남는 대신, 여분의 의미와 깊이를 만들어냈지요. 비슷한 일은 [호프]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린 여전히 외계인의 사연을 잘 모르는데요 (나홍진이라고 다 알고 있을까요), 그게 흔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클리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어요.
물론 파다보면 의미는 나오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전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의 휴전선 부근에서 서부극 액션이 벌어지고 하필 착륙한 외계인들이 할리우드 스타들이며,
이들이 자막을 통해 말이 되는 긴 대사를 하는 걸 보고, 여기서 욕을 퍼부으며 개고생하는 한국인들이 은근히 서부극의 ‘인디언‘처럼 보였더랬습니다.
여기서 주제를 더 발전시킬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럴 의욕이 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성을 가진 비인간 종족과의 만남과 관련된 윤리학을 파고들 수는 있는데,
여기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할 수 있는 다른 영화나 소설들이 있습니다. 굳이 [호프] 갖고 그 이야기를 할 생각은 안 들어요.
[호프]의 재미를 이루는 것들은 다 표면적인 것들입니다. 표면적인 매력, 표면적인 흥분, 표면적인 유머.
파편화되고 부서져 있는 구조는 그 표면적인 재미의 일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외계인의 디자인에서부터 편집의 타이밍에 이르는 모든 단점들을 지적해도 영화가 재미없다는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아마 대부분 팬들은 그냥 낄낄거리면서 그걸 다 수긍할 것입니다. 그리고 표면적이고 얄팍하다는 건 무개성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매우 그럴싸하게 캐스팅된 이 영화의 배우들과 이 사람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선명하게 튀는 존재들이고 또 그에 맞게 선명하게 튀는 행동을 합니다.
이들이 충돌하고 뒤얽힌다고 해서 여분의 의미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분의 이야기가 생기고 그것들은 재미있지요.
돈이 꽤 들어간 영화인데, 개봉 당시 국내 흥행이 그냥 그랬고 배우 스캔들과 같은 악재가 겹쳐서 많이들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반응이 괜찮고 속편 만들 투자자들도 생겼다니 굳이 우리가 나서서 나홍진을 걱정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나홍진이 돌아다니면서 여러 이야기를 떠들고 다니긴 하는데, 솔직히 생각나는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거 같습니다. 아닐 수도 있죠.
하지만 전 이 영화가 굳이 속편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만으로도 괜찮은 결말 같아요.
‘세상이 뒤집히고 망하는 거 같은데, 난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라는 영화의 정서를 생각해 보면 말이죠.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