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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저택 살인사건

   개요   :  스릴러, 서스펜스

   개봉일   :  2017-05-09

   감독   :  정식, 김휘

   출연   :  고수, 김주혁, 문성근

   등급   :  15세 관람가



빌 S. 밸린저는 영어권에서는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독자층이 남아 있는 추리작가들 중 한 명입니다. 이런 부류로는 코널 울리치, 엘러리 퀸과 같은 작가들이 있죠. 우리나라엔 세 편의 소설이 번역되어 있고, 모두 좋은 작품들입니다. 이 작품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두 개의 스토리 라인이 번갈아 진행되다가 후반에 합쳐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거죠.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밸린저의 [이와 손톱]을 각색한 작품으로 원래는 원제를 그대로 쓸 계획이었죠. 왜 [석조저택 살인사건]으로 제목이 바뀌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이 석조저택이란 건 이야기와 아무 상관이 없고 심지어 그곳이 석조저택이긴 한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안 좋은 제목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두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됩니다. 스토리 1번에서는 현장에서 피해자의 손가락 하나만 발견된 살인사건의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스토리 2번에서는 압둘라 리라는 예명을 쓰는 마술사가 수상쩍은 과거를 숨기고 있는 하연이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나중에 하연이 살해당하자 복수를 결심합니다.

원작이 반전으로 유명한 소설이고 일본에서는 심지어 칼로 잘라야만 결말부분을 읽을 수 있게 책을 만들어 팔았어요. (북스피어에서 나온 두 번째 한국어 번역본 초판도 그렇게 재본되어 있었는데 최근에 나온 개정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 소설의 반전이 그렇게 놀라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시체 없는 살인사건'이라는 설정만 봐도 대충 트릭이 보이잖아요. 전 여전히 이 소설을 좋게 읽었지만 반전을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은 없어요. 두 스토리 라인이 뜻밖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트릭은 같은 작가의 [기나긴 순간]이 훨씬 좋죠.

이 구성은 영화의 완성도에 그리 큰 도움은 주지 않습니다. 반대로 발목을 잡아요. 소설은 트릭을 끝까지 끌고 가기 위해 은근슬쩍 디테일을 무시하고 있죠. 주인공이 복수에 도움이 될 게 분명한 물건을 은폐한다든지. 하여간 좀 이상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영화는 소설에 다른 이야기들을 조금씩 추가해 이야기 후반을 변형시켰는데,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더 이상해져버렸습니다. 소설의 구조는 챕터로 나누어지는 책에서는 자연스럽지만 영화에서는 부자연스럽고요.

영화는 시대배경을 1940년대 후반의 한국으로 옮겼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시공간이고, 또 내용을 고려해보면 어쩔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과학수사와 주민등록증의 지문 때문에 지금 배경으로는 이야기를 만들 수가 없으니까요. 이 배경은 소설의 느와르 분위기와는 꽤 잘 맞으며, 이 배경으로 로컬라이징된 스토리는 6,70년대 한국 범죄 영화의 전통을 잇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후 혼란기에 일본인들이 남긴 보물을 찾는 한국 남자들의 이야기말이죠.

전체적으로 덜컹거리는 영화입니다. 나쁘다기보다는 그냥 덜컹거려요. 원작의 스토리를 어떻게 따라가긴 하는데,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엔 애를 먹고 있지요. 각색과 로컬라이징의 결과물이 투박하고 종종 아귀가 맞지 않고요. 영어권 법정물을 한국배경으로 옮기면 늘 조금씩 어색해지는데, 이 영화도 그렇습니다. 후반부는 관객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 같고요. 막판에 감독이 바뀌었는데, 그 때문인 건지, 아니면 그 전에도 이런 모양이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용보다는 제작 뒷이야기가 더 궁금한 영화예요.


컨텐츠 제공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