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이미지
옥자

   개요   :  모험, 액션, 드라마

   개봉일   :  2017-06-29

   감독   :  봉준호

   출연   :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안서현

   등급   :  12세 관람가


0003555312_003_20170612171920984.jpg

옥자는 미란도라는 육류 회사에서 개발한 슈퍼 돼지입니다. 돼지라고는 하지만 하마랑 듀공을 섞어 놓은 것 같은 거대한 회색 동물이지요. 옥자의 자매와 형제들은 세계 곳곳에 있는 농장으로 보내져 10년 동안 성장해왔습니다. 이들 중 가장 잘 자란 돼지가 베스트 돼지가 되는 거죠. 이 모든 것은 회사의 CEO인 루시 미란다의 계획입니다.
하지만 일은 루시의 계획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강원도 시골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옥자와 함께 살아왔던 소녀 미자는 옥자를 회사에 넘겨야 한다는 것, 옥자가 미국의 육류공장에서 고깃조각으로 분해된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옥자를 따라 서울로 간 미자는 역시 옥자를 구출하고 미란도사의 음모를 파헤치려는 과격 동물 보호 단체인 ALF의 멤버들과 만나게 됩니다.

[옥자]는 봉준호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 중 가장 단순하고 원형적인 영화입니다. [오디세이아]처럼 전통적인 영웅 이야기이면서, 그만큼이나 친숙한 소녀와 반려동물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봉준호와 존 론슨이 쓴 각본은 소매 속에 어떤 것도 감추고 있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로 사악한 자본주의자들로부터 자신의 반려동물을 구출하려는 여자아이 이야기예요. 이 시놉시스가 처음 나왔을 때 "설마 봉준호가 저런 이야기를 만들겠어?"라고 어리둥절했던 사람들을 기억하세요? 봉준호는 정말 그런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봉준호는 이 영화가 자신이 처음 만든 러브 스토리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내셔널 벨벳]이나 [꼬마 돼지 베이브] 같은 동화적 명쾌함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옥자]는 어쩔 수 없이 잡탕일 수밖에 없는 영화니까요. [옥자]는 종종 한국영화였다가 미국영화로 전환하고, 코미디로 시작했다가 소름끼치는 호러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멜로드라마로 이어집니다. 굉장히 수많은 분위기와 장르 설정이 불필요한 완충막 없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영화예요. 확실히 기성품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난폭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봉준호의 전작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이 영화의 터치는 거의 온화하게 느껴지겠죠.

[꼬마 돼지 베이브]처럼 관객들을 일시적으로나마 채식주의자로 만드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베이브]보다 훨씬 본격적으로 육식 문화와 공장식 축산에 대해 고민하고 있죠. 동물들이 나오는 일반적인 가족 영화와는 달리 봉준호는 이 주제를 다루면서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투자받기 힘들었겠지만요. 공장식 도살과 관련된 영화 후반의 묘사는 거의 업튼 싱클레어와 조르주 프랑주를 섞어 놓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타임즈의 평론가는 이 장면에서 나치 수용소와 가스실을 연상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전통적인 이야기지만 디즈니식 완벽한 해피 엔딩은 없지요.

봉준호의 작품들 중 가장 '할리우드식'인 영화입니다. 그건 봉준호를 유명하게 만든 그 독특한 한국식 터치가 어느 정도 사라졌다는 뜻인데,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고, 존 론슨과 캐스팅을 통해 새로 들어온 영미권의 유머감각과 상당히 흥미로운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번역을 통한 의사전달은 종종 갑갑하지만 영화는 이를 감추는 대신 본격적으로 드러내 영화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고요. 안서현이 틸다 스윈턴,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릴리 콜린스와 같은 일급배우들과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대범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신기합니다. 이들에 비하면 명동 지하상가 안을 뛰어다니는 CG 슈퍼돼지는 오히려 자연스럽기 그지 없어요.


컨텐츠 제공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