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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믹 블론드

   개요   :  액션

   개봉일   :  2017-08-30

   감독   :  데이빗 레이치

   출연   :  샤를리즈 테론, 제임스 맥어보이, 소피아 부텔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데이빗 라이치의 [아토믹 블론드]는 앤토니 존스턴과 샘 하트의 그래픽 노블 [The Coldest City]를 각색한 영화입니다. 장벽이 허물어지던 1989년 베를린을 무대로 한 스파이물이지만 진지한 냉전 스릴러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이미 지나간 과거에 속한 장르를 페티시적으로 재현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씬 시티] 생각이 좀 나더군요. 

영화의 내용은 MI6 요원 로레인 브로튼이 베를린에서 살해당한 동료 요원 제임스 가스코인이 갖고 있던 리스트를 찾고 이중스파이 사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베를린 장벽 양쪽을 누빈다는 것입니다. 베를린 주재요원인 데이빗 퍼시벌이 이를 위해 협조하려 나서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믿음이 가는 남자가 아닙니다. 나중에 로레인이 얽히게 되는 델핀 라셀도 알고 보면 프랑스 스파이고요. 아주 선한 인물은 없고 모두가 모두를 속이는 더러운 스파이 세상입니다. 영화의 맥거핀인 리스트도 그런 세상의 산물이며 그 때문에 새 시대가 오기 전에 없애야 하는 귀찮은 물건이죠. 

앞에서도 말했지만 진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레이건 시대에 만들어졌다면 우파적인 영화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모든 일들이 역사 저편으로 흘러간 2017년엔 그냥 옛날 이야기지요. 배배 꼬인 음모나 반전 역시 대단한 의미는 없습니다. 이들은 캐릭터와 액션, 스타일에 배경과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틀입니다. 전혀 다른 내용으로 지금의 [아토믹 블론드]와 같은 영화를 만드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을 거예요. 

이 영화에서 특별한 건 샬리즈 테론이 연기하는 로레인 브로튼이라는 캐릭터입니다. 설정만 보면 그냥 흔해 빠진 슈퍼 스파이이고 영화 내내 그런 슈퍼 스파이가 할 법한 일만 골라서 합니다. 그 중에는 소피아 부텔라가 연기하는 프랑스 스파이와 진한 섹스를 하는 것까지 포함되지요. 하지만 브로튼은 이런 류의 주인공들이 가는 길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자주 비교되는 [007]이나 [존 윅]과 비교하면 될 것 같아요. 특히 라이치가 공동연출했던 [존 윅]과 비교하면 재미있습니다. [존 윅]에서 키아누 리브즈가 연기하는 전직 히트맨 캐릭터는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단단한 명성을 쌓았고 아무리 그가 뒤로 빠지고 싶어해도 그 세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그의 능력을 찬양하죠. 하지만 베를린에서 브로튼의 명성은 대단치 않고 영화 내내 주인공으로서 스스로를 입증해야 합니다. [존 윅]에서처럼 엑스트라들이 알아서 나가떨어지는 듯한 그림은 나오지 않죠. 

그 때문에 비슷한 스타일로 가더라도 액션의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물론 두 영화 모두 판타지예요. 하지만 [아토믹 블론드]의 판타지는 관객들이 청룡열차를 탄 것처럼 마구 흔들리며 주인공과 함께 두들겨 맞고 넘어지고 두들겨 패고 넘어뜨리는 동안 엄청난 타격감을 받는 그런 종류의 판타지입니다. 특히 아파트 계단에서 계속 구르면서 7분 넘는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액션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아플 지경입니다. 그리고 샬리즈 테론은 이 모든 장면을 엄청난 설득력으로 그려내고 있어요. 

결국 샬리즈 테론의 쇼입니다. 영화 전체가 샬리즈 테론이 발산하는 슈퍼스타의 광채를 받아 네온빛을 발하죠. 가끔 느려지는 페이스나 정리 안 되는 스토리와 같은 단점도 테론이 등장해 주변 남자들을 두들겨 패는 동안 그냥 잊혀집니다. 종종 피와 멍으로 얼룩덜룩해지긴 하지만 그냥 모든 게 참 아름답네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