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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이즈 본

   개요   :  드라마, 멜로/로맨ㄴ스

   개봉일   :  2018-10-09

   감독   :  브래들리 쿠퍼

   출연   :  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

   등급   :  15세 관람가



브래들리 쿠퍼의 [스타 이즈 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간단한 역사를 읊어야 할 것 같아요. [스타 이즈 본]은 그냥 [스타탄생]입니다. 윌리엄 웰먼 감독, 자넷 게이너, 프레드릭 마치 주연의 1937년작 [스타탄생]의 세 번째 리메이크지요. 1954년에 조지 큐커 감독, 주디 갈란드, 제임스 메이슨 주연의 첫 번째 리메이크가, 1976년에 프랭크 피어슨 감독,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주연의 두 번째 리메이크가 나왔지요. 세 번째 리메이크는 원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비욘세와 함께 만들려고 했던 영화인데 이게 틀어져서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가 주연한 쿠퍼의 첫 감독작이 되었지요. 아, 웰먼의 영화 전에는 '비공식 원작'이라고 불리는 영화가 한 편 더 있어요. 첫 번째 리메이크를 만든 조지 큐커가 감독한 [What Price Hollywood?]예요. [스타탄생]과 스토리가 아주 비슷한데, 내용은 더 가혹합니다. 첫 번째 [스타탄생]의 감독직은 원래 큐커에게 갈 뻔했지만, 큐커가 자신이 전에 만든 영화와 너무 비슷하다고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고요. 정리가 되었나요? 

80년 넘게 꾸준히 반복되어 온 이 이야기의 내용은 뭘까요? 크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예계의 거물 남자가 재능있는 젊은 여자를 발굴해 데뷔시킵니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합니다. 여자는 업계에서 성공하지만 남자는 점점 몰락해가요. 자신이 여자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자살하고 (74년 버전에서는 좀 애매한 교통사고로 죽어요) 슬퍼하는 여자는 업계의 중요한 행사에 나와 자신을 '미시스 (남편 이름)'이라고 소개합니다. 전 안 좋아하는 대사이고 옛날 [스타탄생] 영화를 보면서 왜 서양 사람들은 저런 걸 좋아하나, 라고 생각했지만 하여간 그 대사는 좀 약화된 버전으로 변형되어 브래들리 쿠퍼 영화에도 실려있습니다. [What Price Hollywood?] 이야기를 한다면, 여자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요. 대신 젊은 폴로 선수와 결혼했다가 이혼하죠. 

[What Price Hollywood?]에는 남자를 잘 만난 기회주의자인 젊은 여자가 승승장구하는 과정을 좀 재수없게 보는 당시 할리우드 사람들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프리코드 멜로드라마의 설정이 [스타탄생]으로 넘어오면서 여자주인공에게 관대해지는 방향으로 간 거죠. 주디 갈란드 버전부터 여자주인공은 가수가 되었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때부터 음악계로 완전히 자리를 옮겼는데, 그 덕택에 영화는 주인공에게 진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아주 쉽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영화를 찍을 때 이미 스타이기도 했고요. 할리우드의 광휘는 그 과정 중 조금씩 시들해졌습니다만. 그래미 상도 중요한 행사지만 아카데미만큼은 아니잖아요? 

브래들리 쿠퍼의 영화는 이 80여년 먹은 이야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더했을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나 캐릭터는 여전히 1937년 버전 그대로입니다. 두 주인공 모두 가수이기 때문에 1974년 버전에서도 많은 설정을 가져오고 있고요. 당연히 우리 시대의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예를 들어 주인공은 남자와 첫 공연 이후 유튜브 스타가 됩니다. 데뷔 이후 [SNL] 공연을 하기도 하고요.) 기본 이야기나 주제는 그대로예요. 오래된 이야기를 성실하게 하는 영화인 겁니다. 

좀 요새 배경의 옛날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70년대 쯤 찍은 대작 영화요. 그렇다고 촬영이나 편집이 고풍스럽다는 건 아닌데 (정반대예요. 오히려 꽤 자유롭고 도전적이죠) 그 재료는 전통적이에요. 오래 묵은 전통적인 멜로드라마를 씹어 삼키는 두 주연배우의 스타성과 화학반응요. 그리고 영화는 그 전통적인 재료를 아주 훌륭하게 다루고 있어요. 특히 배우들의 얼굴과 표정을 이렇게까지 존중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최근 들어 못 본 것 같습니다. 이게 배우 출신 감독의 장점인지, 쿠퍼가 좋은 스태프를 끌고와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당연히 배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이 영화의 캐스팅은 저에게 그렇께까지 잘 먹히는 건 아니에요. 전 브래들리 쿠퍼의 스타성에 그렇게까지 신경 쓴 적이 없습니다. 꽤 많은 출연작을 보았지만 생각나는 건 여전히 [앨리어스]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광고죠. 레이디 가가는 첫 영화 출연작이고요.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엔 캐스팅에 대한 걱정 따위는 사라져버립니다. 두 배우가 정말 잘 하고 있기도 하지만 영화 전체가 이들을 너무나도 잘 살리고 있어요. 무엇보다 이들은 등장할 때부터 스타이고 끝까지 스타처럼 보입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 거죠. 

[스타 이즈 본] (아, 왜 이렇게 제목을 지었지?)이 최고의 [스타탄생] 영화인가? 아뇨. 전 여전히 조지 큐커의 영화가 정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 배우의 스타성, 시대가 완벽하게 일치했던 순간에 만들어진 영화였죠. [스타 이즈 본]은 그에 비하면 이 소재의 끝물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0년이나 40년 뒤에 또 누군가 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래보여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래들리 쿠퍼는 자신이 엮을 수 있는 할리우드의 자산을 총동원해 놀라운 호소력을 가진 멜로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런 영화가 나와서 전 지금도 좀 신기해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