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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개요   :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개봉일   :  2019-01-10

   감독   :  크레이그 맥닐

   출연   :  크리스틴 스튜어트, 클로에 세비니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크레이그 윌리엄 맥닐의 [리지]는 유명한 보든 도끼 살인사건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저에게 이 사건의 주인공인 리지 보든은 크리펜 박사와 함께 황금기 영어권 추리소설의 관용구와 같은 존재였죠. 그 어느 작품도 이들 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 시대가 되기 전까지 무지 궁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보든 사건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882년 8월 4일, 메사추세츠 주 폴 리버에서 애비 보든과 앤드루 보든이 손도끼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됩니다. 둘은 부부였고 애비는 앤드루의 두 딸 엠마와 리지에게 새엄마였습니다.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두 딸 중 살인 당시 집에 있었던 리지였죠. 리지는 체포되었지만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사건은 미해결로 남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수많은 가설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리지 보든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몇몇 사람들에겐 다른 가설이 있습니다. 리지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동기나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요. 하여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는 사건이어서 그 동안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오페라, 발레, 소설 기타등등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브라이스 카스가 쓴 [리지]의 각본도 자기만의 이론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는 리지와 하녀이고 이 사건의 유력 증인이었던 브리짓 설리번이 애인 사이였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 이론은 전에 추리작가 에드 맥베인이 자신의 소설 [리지]에서 한 번 제시했던 것인데, 영화가 맥베인의 가설을 그대로 따르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리지 보든이 동성애자라는 루머는 당시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 가설에 기초해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보든 살인사건의 진상을 재구성합니다. 그리고 그건 마치 추리소설 후반의 명탐정 강의처럼 말이 됩니다.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일도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단지 그렇다고 제가 이 가설을 믿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가설은 황금기 추리소설의 범죄처럼 복잡하고 치밀한데, 보든 사건이 그렇게 치밀한 범죄자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생각은 안 들거든요. 물론 이 모든 게 치밀한 범죄자가 짜놓은 디자인의 일부일 수도 있겠지만. 누가 알겠어요. 

진상이 무엇이건, 영화는 19세기 미국 중상층 계급의 미혼 여성이 가족내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억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악당은 앤드루죠. 마을의 가난한 농부들을 착취하고, 집에서는 딸들에게 폭군이고, 당연히 성범죄자이기도 합니다. 앤드루 보든에게 동정적인 리지 보든 이야기는 거의 없을 거예요. 게다가 이 영화에서 리지는 동성애자이니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 상황에서는 살인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들의 관심은 리지와 브리짓의 관계에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가 그리는 건 19세기적으로 억압된 로맨스예요. 삭막한 삶을 살던 두 여자가 서로에게서 의미를 찾지만, 이들은 끝까지 자신을 가두고 있는 계급과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가씨]에서 느꼈던 해방감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지요. 하지만 비극의 재료로는 충분합니다. 추리물의 동기로도 만족스럽고요. 자칫하면 선정적일 수도 있는 소재인데, 영화는 비교적 균형을 잘 잡고 있고 미심쩍은 몇몇 설정을 감출만큼 배우들의 연기도 좋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클로이 세비니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커플로 나오는 영화를 얼마나 자주 볼 수 있겠어요?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