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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

   개요   :  스릴러, 공포

   개봉일   :  2019-03-27

   감독   :  조던 필

   출연   :  루피타 뇽, 윈스턴 듀크, 엘리자베스 모스, 팀 헤이덱커,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애나 디옵

   등급   :  15세 관람가



며칠 전 조던 필의 [어스]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번 주에 개봉했고요. 아무도 예측 못한 대성공을 거둔 [겟 아웃] 때문에 압박감이 상당했을 텐데, 필의 두 번째 영화는 전작 못지 않게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겟 아웃]보다 더 재미있게 보았어요.

영화는 좀 피투성이 [환상특급] 같습니다. [환상특급]스러운 기괴한 판타지인데, 폭력 묘사가 많고 사람도 많이 죽어요. 그리고 의외로 유머가 풍부합니다. 정말 대놓고 하는 뻔뻔스러운 농담들이 여기 저기에 심어져 있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엄마 아빠 딸 아들로 구성된 4인 가족이 여름 휴가를 갑니다. 근데 그들과 똑같이 생긴 빨간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별장을 습격해요. 가족은 간신히 탈출하지만 그런 일은 겪는 건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전체가 도플갱어들의 습격을 받고 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영화는 후반부에 이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이게 말이 되느냐? 전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걸 이치에 맞게 설명하려면 정말 이상한 설명들이 또 붙어야 해요. 아, 뒤에 반전도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눈치챌 수 있는 종류죠.

초기 샤말란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한 상황을 다룬 아주 잘 만든 영화예요. 뒤에 반전도 있지요. 단지 [어스]의 결말은 샤말란 영화의 결말의 허무함이 없습니다. 반전이 예상 가능하다는 게 오히려 장점인 거 같아요. 당연한 결말이기 때문에 스토리가 붕괴되는 일이 없습니다.

[겟 아웃]처럼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는 설명도 저에겐 장점 같습니다. [어스]는 상황이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단번에 감이 오지 않는 영화입니다. [겟 아웃]은 주제와 의미가 뚜렷하지 않습니까. [어스]는 아닙니다. 이 영화는 인종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종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도 그게 전부는 아닐 겁니다. 가족과 미국이라는 나라와 계급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해석 가능성을 놓고 끝없는 인터넷 토론이 가능합니다.

피투성이이긴 하지만 고어 묘사가 많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림만 보면 끔찍해보이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정당화되는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침입, 탈출, 반격으로 이어지는 액션의 서스펜스는 강렬합니다. 그리고 상당히 재미있게 짜여져 있어요. 영화의 호러는 보다 은밀한 편입니다. 가위로 대표되는 물리적 폭력이 주는 공포도 있지만 정체성의 혼란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이 만들어내는 불길함의 무게가 더 큽니다.

영화가 흑인 배우들을 활용하는 방식도 주목할만합니다. 일단 이들이 연기하는 사람들은 보편적인 가족입니다. 이 장르에서는 백인 배우들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간 역할이죠.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상당합니다. 게다가 영화는 흑인 배우들로 이전에 우리가 보았던 호러 영화와 전혀 다른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이들의 얼굴을 도드라지게 하는 대신 오히려 어둠 속에 묻어버리는 거죠. 이게 도플갱어라는 주제와 연결되면 그 이미지의 의미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들이 다 좋긴 하지만, 역시 [어스]는 루피타 뇽오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확실한 일인이역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이기도 하고요. 보통 이런 역할은 캐릭터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는 보다 은밀합니다. 서로에 대한 공포, 분노, 혐오, 연민이 복잡한 화음을 내며 뒤섞이지요. 이들이 자아내는 액션도 거의 잘 안무된 발레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