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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개요   :  드라마

   개봉일   :  2019-04-17

   감독   :  정용주

   출연   :  이청아, 홍종현

   등급   :  12세 관람가




[다시, 봄]은 작년 부천영화제에서 소개된 [밤의 문이 열리다]와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잠에서 깰 때마다 하루씩 과거로 가는 여자 이야기예요. 그런 시간여행을 하게 된 이유도 비슷해요. 죽거나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죠. 아이디어는 [다시, 봄]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2012년에 연재된 웹툰이 원작이에요. 검색해보니 저도 본 적 있는 드라마 [신의 선물 - 14일]이 [다시, 봄]의 표절이라는 주장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전 별로 닮은 거 같지 않습니다. 유사성도 이해할만 해요. 어떤 시간여행 아이디어를 골라도 이미 다른 누군가가 먼저 썼기 마련이니까요. 

[다시, 봄]의 주인공 은조는 신문기자예요. 얼마 전에 혼자 키우던 딸 예은을 잃었지요. 현장에 있던 치매 노인이 용의자로 체포되었고요. 절망한 은조는 자살을 기도하는데, 죽는 대신 하루 전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 뒤로 깨어날 때마다 계속 하루씩 과거로 가요. 이렇게 계속 과거로 간다면 예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을 막는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은조는 여전히 예은의 과거만을 함께 할 수 있을 뿐이죠. 

제가 자주 쓰는 표현이 있죠. '해볼만하다'는. [다시, 봄]도 그렇습니다. 보통 이런 식의 타임슬립 이야기는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죠. 하지만 영화는 딸을 구한다는 미션이 완료된 뒤에도 계속 과거로 갑니다. 은조의 여행은 몇 년이 걸리는 아주 긴 여정이에요.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고, 이런 스토리가 주는 정서도 일반적인 타임슬립 이야기와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영화가 이 가능성을 충분히 살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게 각색의 문제인지, 원작의 문제인지는 모르겠군요. 여러 문제가 있는데, 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시간여행 자체를 그냥 관습으로 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우주가 나에게만 이렇게 관대(또는 가혹)한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습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쓸 생각도 없어요. 예를 들어 은조는 미래에 대한 방대하고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는데, 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만 쓸 뿐입니다. 심지어 신문기자인데 말이죠. 매일 과거로 가면서 계속 분기되는 우주에 대한 고민도 없죠. 자신을 따라 같이 과거로 가는 다이어리 같은 건 그냥 편의적인 반칙이고 타로 카드와 같은 건 클리셰고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주인공의 의지와 방향이 제대로 살아있지 못합니다. 예은을 구한 뒤로 은조는 자신과 같이 동반자살을 하려 했던 치매 노인 용의자의 전직 유도선수 아들에게 집착합니다. 그 아들의 과거를 바꾸면 과거로 가는 여행도 끝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죠. 하지만 이 논리는 허약하기 짝이 없고 정작 마지막에 사태 해결용으로 제시되는 답은 이 몇 년에 걸친 노력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결국 이 이야기는 시간 여행을 하는 여자와 그 여자가 어찌어찌 알게 된 보통 남자의 관계 이야기로 흘러가는데, 이게 균형이 잘 안 맞습니다. 로맨스가 되기엔 두 사람의 관계가 약하고 그 관계 전체가 스토리가 마땅히 가야 할 방향과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죠. 보는 내내 '왜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저 남자 곁을 빙빙 도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로 관심을 가지고 붙어다녀야 할 사람이 따로 있거든요. 같은 증상을 앓는 시간여행자가 한 명 더 있어요. 이 둘을 연결하면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나올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여행자도 은조와 별로 다를 게 없어요. 깊은 고민도, 노력도 없습니다. 

아마 제가 업계 사람이라 이런 것에 민감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타임슬립물의 클리셰를 당연하게 여기는 독자나 관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겠죠. 하지만 이야기 전체를 끌어가는 아이디어를 의심없이 당연히 여기는 태도가 과연 좋은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출처 : 듀나의 영화낙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