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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인형

   개요   :  공포

   개봉일   :  2019-06-20

   감독   :  라스 클리브버그

   출연   :  가브리엘 베이트먼, 마크 해밀, 오브리 플라자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사탄의 인형]은 제가 그렇게까지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원작 프랜차이즈 자체가 80년대 슬래셔 영화의 좁은 우물 안에 속해 있었으니까요. 이를 현대로 끌어오는 시도는 몇몇 팬들을 만족시켰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처키의 디자인이 좀 걸렸어요. [나이트메어] 리메이크 판에서 확 바뀐 프레디 크루거 생각이 났습니다. 원작 처키도 "왜 저런 걸 인형으로 팔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디자인이었지만 악역으로서는 훌륭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번 디자인은 그냥 좀 애매해요. 

그런데 보고 나니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영화는 처키라는 인형이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는 기본 설정을 취하고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러다보니 시리즈의 익숙한 반복이라는 생각이 덜 들고, 새로 하는 이야기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도 신선한 편이었습니다. 물론 슬래셔 호러 영화의 틀 안에서 그렇다는 말이지만. 

영화는 이제 SF입니다. 원작이 연쇄살인마의 영혼이 들어간 저주받은 인형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 고장난 로봇이 나오는 SF죠. 이 영화의 인형은 버디라는 가정용 장난감 로봇입니다. 주인과 상호작용하고 인터넷과 블루투스로 주변 전자기기를 조종할 수 있는. 그런데 해고당한 베트남 공장의 직원이 버디 인형 중 하나에 안전 장치를 빼버립니다. 그게 반품되었다가 마트 직원 카렌의 아들 앤디의 생일선물이 되어 그들의 집으로 들어가지요. 다정한 친구로 설정된 이 고장난 로봇은 앤디에게 집착하게 되고 결국 맛이 가버리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엄격하게 따지면 말이 안 됩니다. 이 영화의 처키는 도대체 무슨 배터리로 움직이는 걸까요? 어쩌자고 저렇게 힘이 센 걸까요. 장난감에 저런 기술이 적용될 정도면 이미 일상 세상 자체가 바뀌었을 거고 보스턴 다이내믹에선 더 무서운 로봇들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요? 차라리 귀신 들린 인형이 더 말이 되는 건지도 모릅니다. 초자연현상이라고 우기면 아무리 어색해도 대충 설명이 되니까요. 그래도 보다보면 현실적인 공포가 슬그머니 기어오릅니다. 이 영화의 설정은 SF라고 우기는 판타지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은 이미 첨단 과학기술에 잠식되어 있어서 이게 그렇게까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는 기본 슬래셔 호러의 공식과 요구에도 충실합니다. 고어 장면을 아주 극단적으로 밀고 가지는 않아요. 하지만 충분히 난폭하고 잔인하고 뻔뻔스럽습니다. 몇몇 얄미운 인간들을 죽일 때는 아주 즐거워하는 티를 내며 관객들에게 불쾌한 공감을 유도하기도 하는데, 이게 먹힙니다. 이런 설정에 대놓고 유머를 끼워넣기도 하는데, 이 역시 그럴싸하게 잘 섞여 있습니다. 

무엇보다 눈높이를 잘 살린 영화입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지만 결국 [사탄의 인형]은 아이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잖아요. 영화는 슬래셔의 폭력만큼이나 주인공 앤디의 심리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가 엄마의 새 남자친구와 겪는 갈등, 새로 이사 온 낯선 동네에서 겪는 불안함과 외로움과 분노를 선물로 받은 장난감에 투영하는 과정 모두 잘 살렸어요. 그뿐만 아니라 앤디가 새로 사귄 아이들의 묘사도 상당히 좋습니다. 폭력 묘사가 끔찍해서 그렇지 은근히 청소년 모험물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에요. 

처키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전 여전히 디자인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크 해밀이 훌륭한 목소리 연기를 하고 있고 인형의 연기는 확실히 발전했어요. 얼굴은 낯설지만 더 좋은 배우랄까. 모르죠.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새 얼굴에도 적응하게 될는지.

 

출처: 듀나의 영화낙서판